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는 성경에 기록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늘 예루살렘이신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예루살렘은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두 언약 가운데 신약을 표상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갈라디아서 4장 26절의 말씀은 실제로 우리에게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 아니다. 21절부터 읽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21~31)
분명히 말씀하시길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하시면서 “하가는 구약을 표상하고 사라는 신약을 표상”한다고 하지 않는가! 실제로 우리에게 어머니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을 사라, 예루살렘으로 비유한 것일 뿐이다. 즉 우리는 새 언약으로 자녀가 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21~31)
분명히 말씀하시길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하시면서 “하가는 구약을 표상하고 사라는 신약을 표상”한다고 하지 않는가! 실제로 우리에게 어머니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을 사라, 예루살렘으로 비유한 것일 뿐이다. 즉 우리는 새 언약으로 자녀가 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어머니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말씀인지 하나님께서 이 말씀에 담아놓으신 뜻을 살펴보자. 그들의 주장처럼 두 여자는 두 언약을 표상하고 있다. 단지 그것뿐이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왜 사도 바울은 ‘사라는 새 언약’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문맥상 앞의 구절에서 두 언약 가운데 ‘하나(구약)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하였으면, 사라에 대한 설명도 ‘하나(신약)는 … 사라라’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바울은 사라에 대한 언급은 아예 하지 않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먼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보자.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갈라디아서 4장의 하늘 예루살렘이 요한계시록 21장에도 등장한다. 천사는 요한에게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주겠다고 하고, 하늘 예루살렘을 보여준다. 과연 하늘 예루살렘은 누구일까. 정말 신약만을 가리키는 것일까.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하늘 예루살렘은 성령과 함께 생명수를 주시는 구원자시다. 성령은 성삼위일체의 아버지 하나님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 그가 곧 신부(The bride)이다. 또한 19장에서도 신부는 어린양과의 혼인 기약을 이루기 위해 단장하시는 인격체로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 4장 26절에서 하늘 예루살렘은 어머니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사라가 어머니 하나님을 표상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실제로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아버지 하나님을 표상한다고 하였으니, 그의 아내 사라는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을 표상한다(누가복음 16:19~24). 하나님께서는 왜 사라를 어머니 하나님을 표상하도록 한 것일까. 이는 아브라함 가정에서 일어난 상속 문제 곧 후사를 결정하는 내용에서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의 유업을 누가 이을 것인가를 놓고, 하갈의 자녀인 이스마엘과 사라의 자녀인 이삭이 후보로 올랐다. 결국 갈라디아서의 내용처럼, 하나님께서는 종의 자녀인 이스마엘이 아닌 자유자인 사라의 자녀 이삭을 선택하셨다. 오직 이삭은 그의 어머니가 사라라는 이유만으로 유업을 얻은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내용을 실존했던 아브라함 가정의 역사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라고 가르치면서 우리의 구원과 결부시켰다. 우리가 이삭과 같은 자가 되어야 하늘의 유업을 얻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곧 어머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이삭과 같은 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우리들의 축복은 어머니 하나님을 통해서 얻어진다. 하늘 예루살렘을 두 언약 가운데 신약으로만 국한시킨다면 큰 오산이다. 바울의 증거대로라면 하늘 예루살렘은 성령과 함께 생명수를 주시는 ‘우리 어머니’시다.
출처-패스티브닷컴
하늘에 우리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영원한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땅까지 육의 모습으로 친히 내려오셨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