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3일 수요일

다윗의 뿌리가 세우신 교회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소망합니다.
그럼 과연 세상에 이많은 교회중에서 어떤교회가 우리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할까요?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마13/10~11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하셨으므로 모든교회가 천국의 비밀 즉 영생의 축복을 줄수는 없습니다.
그럼 과연 어떤교회가 우리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해 줄수 있는지 성경을 통해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계5/1~5 내가보매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하니
하늘위에나 땅 위에나 땅아래나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이가 없더라........
장로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일곱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여기서 보좌에 앉으신분은 하나님이십니다.그리고 오른손에 책은 성경책입니다.그런데 이 성경이 일곱인으로 인봉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대로 인봉되어 있다면 어떻게 구원받을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누가 개봉한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다윗의 뿌리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느 교회가야 구원받을수 있을까요.....
다윗의 뿌리가 계시며 세우신 교회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일에 다윗을 구하고 경외하는 사람들만 구원받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호3/5 그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이처럼 신,구약 모두 말일에는 반드시 다윗을 찾아 경외하므로 구원을 얻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믿음의 목적인 구원을 받으려면 성경이 증거하는 다윗을 찾아서 경외하여야하는데요
그럼 과연 이 인봉된 성경(천국의 비밀)을 개봉해주실 다윗은 누구신지?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을 다윗의 뿌리다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찾아야할 다윗은 마지막때 다윗이므로 초림예수님이 아니시고 재림예수님이십니다.
하지만 성경은 재림예수님이 오실때 수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등장할 것이라고 경고 하고 있습니다(마24/3)
그럼 어떻게 우리는 우리에게 성경의 비밀인 천국비밀을 하락하실 재림예수님을 알아볼수 있을까요...
성경은 재림예수님을 알아볼수 있는 확실한 증표가 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55/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이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니라

다윗으로 오시는 재림예수님에게 영원한 언약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럼 이 영원한 언약은 무엇일까요?

히13/20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영운한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언약이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언약이 무엇인지?




마27/19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데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26/26~28 저희가 먹을때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피 언약의 피니라
유월절 진리속에 예수님의 언약의 피를 담아두셨습니다 .또한 이유월절을 새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눅22/20저녁먹은 후에 잔도 이와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 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의 언약의 피를 새언약 유월절이라 알려주셨습니다.
이귀한 생명의 진리가 예수님과 사도들이 모두 돌아가신후 차츰 흐려지기 시작하여 마침내
AD325년 니케아 종교 회의를 통해 페지되어 1600년동안 감추어져 인봉되었던 것입니다.
이귀한 진리를 다시 가지고 오신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분명 성경이 증거하는 다윗의 뿌리요 재림예수님이십니다.
바로 새언약 유월절을 가지고오신분 안상홍님 이십니다.....
그러므로 안상홍님께서는 모든 성경의 인봉된 비밀을 개봉해 주실것이고 천국으로 인도해주실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안상홍님께서 우리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세워주신 교회는?

 
 
 
 
 
 
 
 
 
 
 
 
 
 
 
 
 
 
 
 
 
 
 
 
 
 
 
 
 
 
 
이처럼 성경은 말하기를 다윗의 뿌리(안상홍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인봉된 책을 개봉할수 없다고 알려줍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책을 개봉할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해석이 과연 옳을까요?....아닙니다 왜냐면 그들은 다윗의 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켠 그러한 해석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벧후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이말씀과 같이 안상홍님께서 세우주신 하나님이교회(안증회)가 아니면 억지로 풀다가 결국 멸망에 이를수 받게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성경의 예언따라 이땅에 친히 오셔서 하나님의교회(안증회)를 세워주시고 모든 천국의 비밀을 알려주신
안상홍님은 성경이 증거하는 다윗의 뿌리시요 재림그리스도시며 이시대 구원자이십니다.
세상에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오직 우리의 영혼의 구원 축복이 있는 교회는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교회(안증회)뿐임을 명심하시고 모두가 하나님의교회(안증회)에 오셔서 영생의 축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2014년 6월 14일 토요일

하나님의 교회는 왜 꼭 다른 교회에서 안 하는 것만 골라서 하나요?



십자가도 없고, 다른 교회는 일요일에 교회 가는데, 토요일에 교회 간다고 하고.. 크리스마스도 예수님 탄생일이 아니라 해서 지키지도 않고..
남들 하는 것에 적당히 맞춰서 가면 뭐라 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 같은데, 유독 하나님의 교회만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주위에서 좋지 않은 말도 들리는 것 같은데요.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다른 교회들과는 다르게 너무 독특하고 고유의 색상이 강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교회의 이러한 것들이 유난한 것 같은데요.
여기에 대해서 제가 만족할 수 있는 답변을 해 주실 분 안 계신가요?

<답변>

하나님의교회 왜? 십자가가 왜? 없나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를 단순히 교회의 상징 정도로만 생각하고 교회라면 당연히 십자가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교회는 십자가를 세우지 않습니다. 교회가 참 크고 멋진데 교회라면 있어야할 십자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있어야 사람들이 잘 찾아갈텐데 말이죠


그럼 왜? 하나님의교회는 십자가를 세우지 않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 성경을 통해 확인해 봐야됩니다. 성경에 십자가를 세우라 하셨으면 세우면 되겠지만 세우지 말라 하셨으면 세우지 말아야 하나님 뜻대로 하는 교회이니까요(마7:2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교회가 구원이 있는 교회요 참 하나님의교회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십자가를 세우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에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0장4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절만 안하면 된다고 하셨나요?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형상을 만드는 것 자체가 바로 우상입니다.
목상(나무로 만든 형상)이나 주상(기둥으로 세운것)이나 석상(돌로 만든 형상)등 어떻한 것으로도 만들지 말라(렘26:1)하셨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우상이라 하셨습니다. 우상이 스스로 생긴것은 아니쟎습니까? 사람이 만든것 십자가도 저절로 만들어 진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 형상을 세우는 것은 곧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 병원의 십자가도 사람이 만든 것이니 우상이겠네요?라고요
병원의 표시인 십자가 형상이 신앙적 의미로 만들어진 것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병원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한 나라를 나타내는 국기도 그 국가를 나타내는 표시이지 우상이 아닙니다. 우상이라 말하는 것은 신앙적 의미로 만들어 진것을 말합니다  십자가는 그 의미가 교회 즉 신앙적 의미로 만들어진 형상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우상입니다.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찌니라 (신27:15)


하나님께서는 그 어떠한 형상도 만들지도 말고 세우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저주가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도 절하지도 말아야 겠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교회는 왜 토요일에 교회에 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에 쓰여있는 내용대로 행하는 참진리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하나님 말씀이 기록되어있는 성경책에 있는 내용대로 행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성경내용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진리가 없는 거짓입니다.


인터넷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간이기때문에 답변이 많이 달린다면 혼돈하기 쉬울 것입니다.


성경대로 행하는 하나님의 교회에 직접 방문하셔서 궁금한 것들을 모두 알아가시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성경에 나온 안식일이 왜 토요일인지 성경을 통해 증거된 내용을 봅시다.



1. 천지 창조와 안식일

안식일은 단순하게 "쉬는 날"이란 의미에 앞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념하는 날"로써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창조사업을 마치신 후, 제 7일째 안식하셨고

또 그 날을 복주셨습니다.

그래서 모세 때에는 십계명 가운데 네 번째 계명으로

(창 2:1∼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을 내리셨는데 그 이유는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1)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날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날이고,

하나님의 권능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은 그 날을 성일로

삼고 거룩하게 지켰으며 하나님께서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정하는 징표로 정해 주셨습니다.(겔 20:11∼17,사 56:1∼7)

이와 같이 안식일은 단순히 쉰다는 의미보다도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하고

제사드리는 의미를 강하게 부여하였고,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복을

주셨지만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벌과 재앙이 닥쳤습니다.

렘 17:24∼27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청종하여 … 안식일을 거룩히하여

아무 일이든지 하지 아니하면 … 이 성은 영영히 있을 것이며 …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2. 일곱째날인 안식일은 무슨 요일인가?

현재 우리는 7일로 구성된 한 주(週)를 가리켜 첫째 날, 둘째 날, …

등으로 부르지 않고 일요일, 월요일 …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로마에서 제정한 것인데 한 주간의 첫째날은일요일이라 부르기로

약속했고, 둘째날은 월요일, 셋째날은 화요일 …,

일곱째 날은 토요일로 부를 것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1) 달력을 보면, 한 주는 7요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달력 맨 처음에 등장하는 첫째날은 일요일이며, 일곱째날은 토요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요일을 가리켜 주말(週末)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2)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 시청하는 "주말(週末)의 명화"를

무슨 요일에 방영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3) 또한, 일기예보(日氣豫報)하는 시간에

"주말과 휴일의 날씨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이는 토요일과 일요일의 날씨에 대한 예보가 아닙니까?

4) 국어사전에도 일요일은 "칠요일의 첫째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토요일은 "일요일로부터 일곱째 날, 주말(週末)"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상 우리 주위의 상식들을 비추어 보더라도 일요일은

한 주의 첫째 날이고, 일곱째 날은 토요일입니다.

5) 성경도 예수님의 부활 장면 속에서 일곱째날인 안식일은 토요일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막 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예수님께서

 무덤 가운데서 부활하신 날은 "안식 후 첫날"

(일곱째날인 안식일을 지내고 난 첫날)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은 지금의 요일상으로는 일요일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 기독교 신자들이 부활절을 일요일에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이 부분을 공동번역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이 일요일이었다면, 부활하시기 전날 즉

안식일은 무슨 요일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토요일) 다음날인 첫째 날(일요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부활 장면을 통해서도

일곱째 날 안식일이 토요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신약에서의 안식일의 의미

구약은 신약에 대한 그림자와 예표였습니다. 구약에 율법을 따라 지켰던

모든 내용들은 신약시대에 이루어질 참 것에 대한 모형이었습니다.(히 10:1)

그러므로 안식일도 구약 성경에는 "여호와의 안식일"(출 31:13, 겔 20:12)

이라고 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마 12:8, 눅 6:5)이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에 율법을 따라 지켰던 안식일은 모형이었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안식일 지키신 본을 따라 사도들도

신령과 진정으로 안식일을 지켰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지킨 새언약의

안식일은 실상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키셨습니다.

눅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는 안식일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으로서,

"예수님(주)의 날"이라는 의미가 추가되었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 눅 6:5)

사도들은 이 안식일을 "주(예수님)의 날"로 지켰습니다.

계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

4. 사도들도 안식일 지킴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이

 변경된 것이었지 (번제를 드리고 집에서 불도 피우지 않던 율법적

안식일에서, 일을 쉬며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하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날짜가 변경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날은

일곱째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도 안식일이 되면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키며 말씀을

강론하곤 하였습니다.

행 17: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

행 20:6∼7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여기에서 "안식 후 첫날" 이라는 말은 "안식일을 지키고 난 다음날인 첫날"

이라는 말로써 사도들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말씀입니다.

5. 안식일의 폐지

예수님의 날인 안식일(일곱째 날인 토요일)이 사도 시대까지

준수(遵守)되었음이 성경의 기록을 통해 입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왜 안식일에 예배드리지 않고

첫째 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을까요? 역사적인 고증에 의하면

일요일 예배는 이교도들의 태양숭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이전부터 로마에서는

첫째날(일요일)을 태양의 날(Sunday)로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고 기독교가 로마를 비롯한 서방 지역으로

전파되었을 때 교회는 태양숭배자들과 접촉하게 되었고 결국

4세기 초에는 태양숭배자의 수장격인 로마의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수많은 태양숭배자들이 교회로 밀려들어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독교의 정신은 퇴색되었고,

태양숭배자들의 의식을 많이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유입되어 들어온 것이 첫째 날(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며 쉬는 제도입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321년에 다음과 같은 칙령을 반포하였습니다.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6. 사단의 간계

안식일의 폐지가 표면적으로는 많은 개종자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라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 사단의 간계가 있었음도

잊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사단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 백성들을 괴롭혀 왔습니다.

대대적인 핍박을 가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시험하는 등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고자 하였지만 하나님 백성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방법을 바꾸어

교회를 높여주고 ‘함께 신앙하자’고 유혹했을 때는

힘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핍박할 때 몰수했던 재산들을 되돌려주고

성직자들은 병역 면제 혜택을 주고, 심지어 교회에 노예 해방권까지

부여되었을 때, 교회는 이미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달콤한 사탕에 자신의 쓸개가 유린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미련한 곰처럼 말입니다.

7.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사람들이 만든 법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법을 따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밖에는 베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은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막 7:6∼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중심으로 하여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는 애초부터 하나였습니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진리교회는,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사도들이 지키던 규례대로

행하는 교회뿐입니다.

아무리 많은 교인을 확보하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행하시지 않은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 종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창조주의 기념일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약의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행적과 사도들의 행적에서

비롯된 새언약의 규례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베푸시는 마지막 날에 구원을 얻을 성도들은

오직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들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발자취 중에 하나인

안식일, 정말 소중한 하나님의 규례요 계명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교회는 왜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에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다만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의 상황을 기록할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교회는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는다.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 2:5~11)

12월 25일이 예수님 탄생일인가?

그렇다면 12월 25일이 왜 예수님의 탄생일로 둔갑한 것일까?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는, 갓난 아기를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어도 될 정도로 따뜻한 날씨였다. 또한 밤에 밖에서 양떼를 기를 수 있을 정도니 분명 겨울은 아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에 탄생하셨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12월이 겨울이니 12월 25일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는 주장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12월 25일이 예수님 탄생일로 지킨 것은 언제부터인가?

기독교에서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킨 것은 354년 로마교회 감독 리베리우스 시대부터다. 이후 379년 콘스탄티노플 시에서 축하하였고 이집트와 팔레스타인까지 전파되었다. 이는 예수님과 열두 사도에게 직접 진리를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가 기독교로 유입된 이유는 무엇인가?


크리스마스가 기독교 내부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교회가 이미 하나님의 진리를 버리고 세속화되고 있었을 때다.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밀라노칙령을 통해 기독교인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기독교인들은 목숨처럼 지켜왔던 안식일 예배와 유월절 진리를 내어주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절기의 기준인 유월절이 폐지돼 버렸기 때문에 기독교에 하나님의 절기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무엇인가?



이 같은 상황에서 이방종교의 축일이 유입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본래 12월 25일은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숭배하던 태양신 니므롯의 탄생일이다. 그것은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되는 사투르날리아 축제일이 가지고 있는 뜻이기도 하다. 로마에는 12월 말에 삼대 축일이 있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됐다. 그 하나는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로 12일부터 24일까지 빈부귀천의 구별을 망각하고 환락에 취하는 날이다. 또 하나는 시길라리아(Sigillalia) 제일로 12월 하순에 있는 것으로 소아에게 인형을 주어 즐기는 절기다. 나머지 하나는 브루말리아(Brumalia) 제일이니 이것은 동지제로서 태양의 떠오름을 축하하는 절기다.


이러한 로마의 축제일에 가담할 수 없었던 기독교인들은 다른 의미로 이날을 축하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일이다.


세계기독교회사(이건사 발행, 송낙원 지음)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이 태양이 나온 후에 탄생하셨다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서 이때로 크리스마스를 삼아 축하하는 풍습이 시작하게 된 것이니 이것이 곧 구주강탄 축하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전 세계인은 로마의 태양신 숭배 의식을 행하며, 크리스마스와는 상관없는 구주 탄생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독교계 출판사는 물론 대중 언론 매체에서도 수없이 이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는 사실이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실체를 보면서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온 세상은 악한 자에 의해 컨트롤되고 있다는 요한일서 5장 19절의 말씀, 그대로가 아니겠는가.




2014년 3월 31일 월요일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다니엘 12:3)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받은 계시의 마지막에 이 글을 기록했다. 다니엘 12장 내용은 ‘끝 날’에 대해 알려주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전도의 궁극적인 의미를 심어 준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췬다’는 이 말씀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은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을 옳은 곳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자신도 옳은 길을 걸어가며 주위에 옳지 못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옳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 과연 옳은 곳은 어디이며 옳은 행동은 무엇일까.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시편 116:5)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시편 132:13~14)


온전한 의로움은 하나님에게만 있다. 해서 옳은 곳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거처를 삼고자 하셨으니 다니엘 선지자가 말한 ‘옳은 데’는 곧 ‘시온’이 된다. 즉 다니엘 12장의 말씀은 많은 사람을 시온으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췬다는 뜻이다.


또한 옳은 행동은 시온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이다. 시온은 어떤 곳인가.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이사야 33:20)


시온은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다. 하나님의 절기에는 3차로 나뉜 7개의 절기가 있다. 유월절로 비롯된 일곱 가지 절기는 일 년 동안 지켜진다. 하나님의 절기의 시작을 알리는 유월절조차 모르면서 의로움을 논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전도하고 싶다면 시온이 어디인지, 유월절을 어떻게 지키는 것인지 먼저 알아봐야 할 것이다.

출처-패스티브닷컴

2014년 3월 24일 월요일

돌고래의 모정(母情)

한 관광객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린 동영상이 큰 화제다. 동영상 제목은 ‘아기 돌고래야 집에 데려다 줄게”다. 영상 속 어미 돌고래는 새끼 돌고래를 등지느러미 위에 업고 헤엄쳤다. 새끼 돌고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몸에 깊은 상처들이 나 있고 혈흔은 까맣게 변해 있었다. 이미 죽은 것이다.

파도에 새끼 돌고래의 사체가 휩쓸려갔지만 어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새끼를 찾아 등지느러미에 업고 계속 헤엄을 쳤다. 이런 모습은 3일 동안 관광객들에게 포착됐다고 한다. 많은 네티즌들이 이들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죽은 새끼 업은 돌고래, 마음이 뭉클하다”, “죽은 새끼를 업은 어미 돌고래의 모습이 마치 사람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죽은 자식조차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어미의 마음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한낱 미물에게도 한없는 모정을 주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로마서 1:20)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주시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신성에는 한없는 모정을 지니신 어머니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의미다. 만물이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으니 그 누구도 그 존재를 몰랐다고 핑계를 대지 못한다. 사도 바울은 명확하게 하늘에 계신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라디아서 4:26)

바울의 증언처럼, 우리에게는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한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어머니 하나님’께서 계신다. 이 어머니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죽어가는 당신의 자녀(롬 6:23)를 품에 안아 영원한 생명이 있는 천국에 데려가기 위해서다. 지금 이 항해에 함께하자. 어머니께서 부르신다.

2014년 3월 12일 수요일

ABC 호흡

응급실은 진료시간 내 또는 시간 외에 발생하는 응급환자의 즉각적인 치료를 위해 운영되고 있다. 응급실 의료진들은 환자의 증상을 신속하게 진단하고, 최단시간 내에 증상에 맞는 응급처치를 수행한다. 또 응급처치 후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관련 진료과로 인계해 준다.
이러한 응급의료는 충분한 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지닌 의사나 간호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전문가의 적절한 응급처치를 받은 경우에는 환자의 증세가 호전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응급실에서는 ‘ABC조치’를 통해 환자의 응급 여부를 판단하고 치료를 진행한다. A는 Airway, 즉 환자의 기도가 확보되어 있는지, B는 Breathing, 호흡 곤란을 겪고 있는지, C는 Circulation, 혈액 순환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응급실에서 가장 위급한 환자는 호흡을 멈춘 환자다. 호흡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호흡에 문제가 있거나 호흡을 멈추면 몸의 모든 장기가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또 뇌세포와 혈액에 산소공급이 중단되어 4분 내에 의식을 잃을 수 있으며 4분 이상이 지나면 뇌가 손상되고 10분이 경과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결국 응급ABC조치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서, 환자의 호흡여부가 가장 큰 핵심이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다. 자칫 영혼의 호흡을 가볍게 여겼다가는 생명이 완전히 중단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이 호흡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도다.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호흡을 멈추고 있는 상태다. 그 기간이 길어질 경우 영혼의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강조했던 것이다(데살로니가전서 5:17).


그런데 성경은 각 시대마다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지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노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시편 116:7)


성부시대에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영혼의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성자시대가 되어서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했을까.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24)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시기까지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기도를 했다는 뜻이다. 그때까지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를 해왔는가. 성부시대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이제는 성자시대가 되었고 예수님께서 구원자로 오셨으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뜻이다.


현재는 2014년, 성령시대다. 성부시대의 여호와, 성자시대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서는 응답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성부시대에서 성자시대로 바뀔 때 기도하는 대상이 바뀐 것처럼 성령시대에도 기도하는 대상이 바뀌었으며 그분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7)


···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베드로전서 2:4)


성령시대의 구원자는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 즉 새 이름이다. 새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제대로 된 영혼의 호흡을 하는 것이며, 기도의 응답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호흡에 문제가 생기면 얼마 안되어 사망에 이른다. 기도는 생명을 유지하는 최선의 길이다.

출처-패스티브닷컴

2014년 3월 6일 목요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하문하셨다. 그럴 때마다 베드로는 “그러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한결같이 사랑을 고했다. 베드로의 확실하고 뜨거운 마음을 확인하신 예수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 하시며 양 무리를 부탁하셨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신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시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1:15~17)


이 대화는 오늘날 그리스도를 사랑하노라 하는 목사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부흥회를 열 때에도, 설교를 할 때에도, 기도를 할 때에도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고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고 울부짖으며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는 목사들도 많이 봤다. 이다지도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양 무리를 먹어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양들을 먹여야 할 것인가.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 (누가복음 4:16)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시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들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살리기 위해, 양들에게 죄 사함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 새 언약을 세워주셨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다면 새 언약 규례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도 가르쳐주셨다. 베드로는 목숨을 다해 예수님을 사랑했다. 그러기에 새 언약의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켰으며, 새 언약의 규례를 전하며 양 무리를 먹였던 것이다.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바울도 새 언약의 규례로 양 무리를 먹였다(고린도전서 5:7~8, 사도행전 17:2).


안타깝게도 자신의 목숨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목사들이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새 언약의 안식일과 유월절을 이단 취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방종교의 규례인 일요일예배와 크리스마스는 꼬박꼬박 지킨다. 누구나 말로는 ‘사랑한다’고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다면 그것은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늘날 기성교단 목사들도 사도 베드로와 바울처럼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먼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6:46)

출처-패스티브닷컴

2014년 2월 23일 일요일

성자시대 기한은 끝났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바꿔 말하면 모든 것에는 기한이 있다는 의미다. 무언가를 심었다면 거둘 때가 있고, 견고하게 지은 건축물이라도 무너질 때가 있다. 사람의 인생은 어떤가. 사람이 태어나 수명이 다하면 죽게 되고,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행복이라도 언젠가는 끝이 날 때가 있다. 이러한 진리를 성경은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전도서 3:1~2)


‘기한’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하자면 식품의 신선도를 나타내는 ‘유통기한’을 예로 들 수 있다. 식품을 구입할 때 ‘유통기한’이 지나면 변질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을 하고 구입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도 ‘기한’이라는 것이 있다.


생각해 보라.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구원자로서 역사하셔도 될 텐데, 왜 성자 예수님께서 등장하셨겠는가. ‘오직 여호와’만을 구원자로 부르짖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로 오셨고,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거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1~12)


그런데 이상하지 않는가.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향해 “우리에게 구원을 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분명 구약성경에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 외에 구원자가 없다”는 말씀을 기록해 두셨는데 말이다(이사야 43:11).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기한’에 있다. 성자시대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이며 이 시대에 다른 이름을 구원자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시대 구원자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성자시대 구원자다. 성부시대의 기한이 마쳐지고 성자시대로 넘어오면서 구원자의 이름이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성자시대에는 더 이상 ‘여호와’의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구원자의 이름에 ‘기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하셨던 것이다(요한복음 16:24).


이제 성부시대, 성자시대의 기한은 끝났다. 지금 우리는 성령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예수’라는 이름이겠는가. ‘예수’는 성자시대 구원자의 이름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성령시대에는 더 이상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성자시대의 기한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예수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아직도 성령시대 구원자인 예수님의 새 이름, 안상홍님을 믿지 못하고 여전히 성자시대 구원자인 예수님만을 부르짖는가. 2천 년 전 유대인도 그러했다.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여전히 성부시대 구원자인 여호와만을 부르짖었다. 그들의 결과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시대를 분별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누가복음 12:56)

출처-패스티브닷컴